2017년 기예르모 델 토로가 선보인 <셰이프 오브 워터>는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외로움과 차별, 사랑과 해방에 대한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미국과 소련이 냉전 경쟁을 펼치던 1960년대 초반, 비밀 연구소에서 일하는 말 못하는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가 수조 속 괴생명체와 운명적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델 토로는 영화적 몬스터에 대한 평생의 애정을 바탕으로, 인간과 다른 존재 사이의 사랑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한다. 이 영화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를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미술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본 리뷰에서는 작품을 ‘사랑과 외로움의 환상’, ‘기예르모 델 토로의 연출과 미장센’, ‘음악과 색채, 물의 상징’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사랑과 외로움의 환상
<셰이프 오브 워터>는 외로움 속에서 사랑을 갈망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엘라이자는 도시 외곽의 오래된 극장 위 작은 아파트에 살며,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계란을 삶고, 시계를 맞추고, 욕조에 몸을 담그는 규칙적인 일상을 산다. 그녀는 말을 할 수 없고,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된다. 엘라이자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같은 연구소에서 일하는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와 옆집에 사는 은퇴한 광고 화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다. 둘 모두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로, 젤다는 흑인 여성 노동자라는 이유로, 자일스는 동성애자이자 나이든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 이들은 서로를 통해 따뜻한 유대를 나누지만, 여전히 외로움과 갈등을 안고 있다.
엘라이자의 외로움은 비밀 연구소에서 발견된 미지의 생명체를 만난 뒤 달라진다. 물속에서 인간과 비슷한 체형을 가진 이 크리처는 남미의 강에서 잡혀온 신비한 존재로, 정부는 그를 군사 연구에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엘라이자는 크리처와 눈을 맞추며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본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그녀는 손짓과 물소리, 삶의 리듬을 통해 소통한다. 엘라이자는 크리처에게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보여주고, 음악을 들려주고, 삶을 공유하면서 사랑을 키워간다. 두 존재의 사랑은 사회의 규범과 벽을 넘어서는 새로운 연대의 형태다. 그것은 ‘괴물’로 규정된 존재가 실제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일 수 있음을 상징한다.
영화는 또한 사랑이 가진 치유의 힘을 강조한다. 크리처는 엘라이자의 목에 남아 있던 흉터를 만져 그녀를 숨 쉴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고, 자일스의 탈모와 젊음까지 회복시킨다. 이는 사랑이 육체와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은유다. 반대로 악역인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폭력과 차별, 공포를 체현한다. 그는 군사적 권력과 가부장적 권위를 대표하며, 다른 존재를 이해하거나 공감할 능력이 없다. 스트릭랜드는 크리처를 고문하고, 엘라이자와 친구들을 경멸한다. 그의 손가락이 점점 썩어가는 것은 내면의 부패와 인간성의 부재를 상징한다. 엘라이자와 크리처의 사랑이 순수하고 해방적인 반면, 스트릭랜드의 세계는 억압과 죽음으로 가득하다.
사랑 이야기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와도 교차한다. 자일스는 젊은 웨이터에게 호감을 갖지만, 그의 동성애적 감정은 거부당하고 가게에서 쫓겨난다. 젤다는 남편을 돌보는 일에 지쳤지만, 엘라이자의 모험에 기꺼이 동참한다. 이러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사랑과 외로움이 보편적이라는 메시지를 강화한다. 델 토로는 몬스터와 인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하며, 진정한 괴물은 타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이는 관객에게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사회의 규범적 잣대를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연출과 미장센
<셰이프 오브 워터>의 가장 큰 매력은 기예르모 델 토로의 연출과 미장센에 있다. 그는 판타지와 현실, 낭만과 공포를 한데 엮어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구축한다. 영화는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완전히 현실적이지는 않다. 델 토로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적용해, 현실을 과장하거나 초현실적인 요소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연구소, 영화관, 아파트, 레스토랑 등 공간들은 연극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느낌으로 설계되어, 동화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미술과 미장센은 시대감을 잘 살리면서도 색채와 형태를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 연구소 내부는 청록색과 회색이 주조를 이루며, 차갑고 기계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이곳에서 크리처는 쇠사슬에 묶여 있고, 인간들은 흰색과 회색의 제복을 입는다. 반면 엘라이자의 아파트는 따뜻한 녹색과 브라운 톤으로 꾸며져 있어 안락함과 안전함을 준다. 위층에는 오래된 영화관이 있어, 엘라이자는 침대에서 옛 영화 음악을 듣거나 댄스 프로그램을 보며 꿈을 키운다. 이러한 공간 대비는 영화에서 현실과 환상, 억압과 자유를 구분하는 데 사용된다.
델 토로의 카메라 움직임은 유체적이며, 물과 연관된 이미지를 자주 사용한다. 영화의 오프닝은 물속에서 시작해 카메라가 서서히 상층으로 떠오르며 엘라이자의 방을 보여준다. 이는 관객을 영화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장치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허문다. 수조 속 크리처를 비출 때 카메라는 수평으로 움직이며 수면의 빛을 반사시키고, 캐릭터들의 표정을 포착한다. 반면 스트릭랜드의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단단한 삼각대에 고정되어 긴장감을 조성하며, 그의 권위와 냉혹함을 강조한다.
연출에서 델 토로는 배우들의 연기를 최대한 끌어낸다. 샐리 호킨스는 단 한 마디의 대사 없이 엘라이자의 감정과 욕망을 표현한다. 그녀의 표정과 몸짓, 손의 움직임, 눈빛은 캐릭터의 내면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녀가 음악에 맞춰 부엌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엘라이자의 꿈과 자유를 상징한다. 마이클 섀넌은 악역 스트릭랜드를 깊이 있게 연기하며, 권력과 폭력에 집착하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리처드 젠킨스는 자일스의 외로움과 따뜻함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옥타비아 스펜서는 유머와 의리를 겸비한 젤다를 통해 영화의 분위기를 밝힌다.
대사 역시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엘라이자는 말을 하지 않지만, 그녀의 친구들과 환경은 다양한 목소리를 낸다. 연구소 내부에서 과학자와 군인들은 크리처를 ‘자원’으로, ‘무기’로 언급하며 비인격적으로 대한다. 반면 엘라이자와 자일스는 그를 ‘그’라고 부르며 감정을 담는다. 이러한 언어 선택은 인물들의 가치관을 드러내며, 관객에게 크리처를 인간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델 토로는 과학과 군사, 종교, 도덕의 차이를 대사의 층위에서 보여주며, 권력자들의 오만과 약자의 인내를 대비한다.
또한 영화는 독특한 유머 감각을 갖고 있다. 자일스와 엘라이자의 소소한 일상 대화, 젤다의 재치 있는 불평, 스트릭랜드와 판매원 사이의 전기차 대화 등은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 속에 웃음을 선사한다. 이는 델 토로가 공포와 판타지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따뜻함과 유머에도 재능을 발휘한다는 증거다. 이러한 균형 잡힌 연출 덕분에 <셰이프 오브 워터>는 관객에게 감정적 폭을 넓게 제공한다.
음악과 색채, 물의 상징
이 영화에서 음악과 색채, 물은 한 몸처럼 결합되어 영화의 정서를 형성한다. 영화음악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맡아, 프랑스 뮤지션의 감성과 멕시코 감독의 상상력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선율을 탄생시켰다. 데스플라는 아코디언, 플루트, 피아노 등을 사용해 1960년대의 분위기와 동화적 감성을 동시에 표현한다. 주제곡 ‘Elisa’s Theme’는 엘라이자의 순수함과 외로움을 담은 멜로디로, 그녀가 크리처와 만나면서 음악의 화성이 더 풍부해진다. 크리처와의 사랑을 상징하는 곡에서는 하프와 현악기가 푸른빛의 물결처럼 흐르며, 관객에게 감정의 파도를 전달한다. 영화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데스플라의 음악은 해방감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주며, 사랑 이야기의 여운을 남긴다.
물은 영화의 제목과 내용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물은 자유와 억압, 생명과 변화를 모두 내포한다. 크리처는 물에서 자유롭게 숨쉬고 움직일 수 있으며, 엘라이자와의 사랑도 물속에서 완성된다. 둘이 욕실을 물로 가득 채워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그들이 사회의 규범과 금기를 깨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물은 캐릭터들을 씻어내고 치유한다. 엘라이자는 매일 욕조에 몸을 담그며 외부 세계의 상처를 잠시나마 잊고, 크리처는 물이 없으면 숨을 쉬지 못한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모두 물속 장면으로 시작하고 끝나면서, 사랑과 삶의 순환을 암시한다.
색채는 이 상징을 더욱 강조한다. 영화 전반에는 청록색과 푸른색, 녹색이 지배적으로 사용된다. 이는 수족관과 연구소, 엘라이자의 옷과 버스, 연구소의 고성능 자동차까지 곳곳에 나타나며, 물과 동화된 세계를 구축한다. 반면 스트릭랜드의 집과 자동차는 붉은색과 금색, 검정색을 사용해 권력과 군사적 남성성을 상징한다. 엘라이자가 사랑에 빠질수록 그녀가 착용하는 옷의 색도 변화한다. 영화 초반에는 회색과 갈색을 입다가, 크리처를 만난 후에는 밝은 녹색과 파랑이 더해진다. 이는 그녀의 내면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음향 디자인 역시 물의 흐름과 감정의 파동을 결합한다. 크리처가 등장할 때 물방울 소리와 함께 저음의 진동이 느껴지고, 엘라이자가 수조 옆에 있을 때 물 속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가 배경에 깔린다. 이는 관객을 물속으로 끌어들이며, 두 세계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또한 엘라이자가 말 대신 사용하는 손짓과 리듬은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 리듬을 형성한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거나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칠 때, 관객은 언어보다 더 직관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경험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1960년대 팝송과 라틴 음악을 삽입곡으로 사용해 시대적 분위기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 특히 엘라이자가 영화 속 환상 시퀀스에서 크리처와 함께 흑백 뮤지컬처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장면은 황홀한 순간이다. 이 장면은 현실을 잠시 벗어나 두 사람이 마음 속에서 꿈꾸던 세계를 실현하며, 영화가 지닌 동화적 색채를 강화한다. 델 토로는 이러한 음악과 색채, 물을 통해 관객에게 순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사랑의 형상(shape)과 물의 형상을 동일시한다.
결론
<셰이프 오브 워터>는 몬스터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외로움, 차별, 사랑의 해방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섬세한 연출과 풍부한 미장센, 샐리 호킨스와 마이클 섀넌 등 배우들의 열연,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감미로운 음악, 그리고 물과 색채의 상징이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괴물은 누구인가? 사랑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사회가 규정한 ‘정상’과 ‘이상’의 경계를 넘어서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일이 왜 중요한가?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하게 전하며, 판타지의 외피 아래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남는다.